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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이야기/허브

허브 시즌 2

by caffettiera 2015. 7. 10.

초여름이 싱그럽게 다가오며 볕이 베란다를 따사롭게 내리쬐기 시작하니 뭔가 마음이 설레는데, 베란다 구석에 바싹 말라 죽은 허브의 작은 가지들이 눈에 들어 온다. 애처롭게 내려다보다 쓰다듬어 보는데, 죽은 가지에서 향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작년 5월쯤 파종해서 새싹을 보았던 라벤더와 루의 향 이었다. 죽은 나무라 하기에 의아할 만큼 진한 향이 코끝을 때리자 다시금 허브와의 동거를 꿈꾸며 허브 농원으로 향한다.

3년째 허브 키우기에 도전하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4번째에 해당한다.

그저 화분을 집에 들이자고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샀던 화분 중에 율마와 로즈마리가 있었는데, 당시엔 화초 키우기 생초보였던지라 매일 아침마다 적당량의(?) 물을 주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과 행동으로 한 달도 못 채우고 율마와 로즈마리를 보냈던 바 있다.

이후 허브에 관심을 갖게 되어 허브를 키워보자는 생각에 2년 전에 레몬밤, 골든레몬타임, 레몬버베나와 바질을 들였다.

5월에 들여놓았던 모종은 모두 쑥쑥 잘 자라났고, 레몬밤에서는 하얀 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연일 피어났다.

싱그러운 잎사귀를 자랑하며 바질도 쑥쑥 자라더니 이내 꽃대를 세워 나의 맘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동향에 가까운 남동향의 베란다에 내리쬐는 강한 볕이 천혜의 환경을 만들어주어 나의 할 일은 허브에 맞춰 물주기면 충분할 뿐 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브는 관리자의 방심을 용서하지 않는다.

벌레들의 습격을 맞게 된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포동포동하게 살찐 초록진딧물들이 허브의 잎과 줄기에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이미 벌레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고, 레몬버베나는 이미 잎들이 마르고 있었다. 향을 음미하려던 허브들이라 약을 사용해서 벌레들을 퇴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식초를 탄 물을 분무해 보라는 엄마의 조언을 듣기로 한 나는 적당히 식초 섞은 물을 분무기에 넣고 허브의 잎과 줄기에 충분히 뿌려주었다.

결과는 벌레보다 독한 식초의 산에 타버린 듯 레몬밤을 제외한 모든 허브들은 더 이상의 생장을 멈추고 그대로 영영 말라버렸다.

레몬밤은 검게 타버린 잎을 제거해주자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생장을 이어갔고 아픔으로 인해 이전보다 많이 앙상해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집 꼬맹이들에 의해 레몬밤의 화분이 깨어졌고 깨진 집에서 추운 겨울을 맞으며 말라버린 레몬밤을 나는 처분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버렸던 레몬밤의 잔뿌리가 베란다 하수구에 걸려있다가 월동을 하였는 듯, 하수구에서 레몬밤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수구에서 난 잎으로 허브티를 마시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마저 처분해버렸다. 하수구에서 생존하는 레몬밤을 화분으로 옮겨주고 싶었지만, 하수구 안으로 뿌리가 깊이 내렸는지 아무리 잡아당겨도 뿌리를 뽑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삽목을 해서 나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초보였던 것이다.

상큼한 레몬 향으로 가득 찬 베란다가 나의 꿈이었듯, 달콤한 레몬 향의 식물은 벌레들의 꿈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허브키우기 2시즌이 지나갔다.

 

 

 흔들어주면 레몬 향이 공기 중에 하늘거렸던 '레몬버베나'

 

하얀 꽃 소금이 뿌려진 듯한 '레몬밤'

 

레몬향이 난다고 하여 다른 레몬향의 허브들과 함께 들였던 '골든레몬타임'

 

바질삼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