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먼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 에피소드 1 - 번역

by caffettiera 2008. 11. 15.
먼 북소리...
제목이 흥미로워서 몇 번이나 바라만 보고 지나치다 결국 손에 쥐게 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먼 북소리]가 처음이다.
사실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것 조차 몰랐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댄스 댄스 댄스] 등의 베스트 셀러 소설이 그의 작품이었다는 것도 [먼 북소리]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알게 되었다.

서점에 가면 책도 보지 않고 지나치는 곳이 있으니, 일본문학 코너이다.
체질적으로(?) 일본문화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일본만화가 내게 끼친 영향인 듯 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던 습관이 이젠 의식까지 지배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니 무라카미의 유명한 작품들을 모를 수 밖에...
무라카미의 출중한 작품 목록을 보다가, 학창시절 라디오에서 지겹도록 [상실의 시대] 광고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의 반응은, '아...이것이 일본소설이었구나.'가 첫번째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유명한가 했더니 [상실의 시대] 작가였구나.' 등 이었다.
한번 그의 소설을 통해 일본문학에 발들 들여볼까 하고 생각한다.
나의 한 친구 말을 듣자니 무라카미의 작품 중 [먼 북소리]가 제일 나은 듯하다고 한다.
그말에 뻗었던 손을 거두는 듯, 일본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들해진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니 이곳까지 방문하신 무라카미의 팬들이여 우리에 대한 책망을 거두시길...)

[먼 북소리]는 유쾌한 책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유럽 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명랑하게 담고 있으며 종종 킥킥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소설가인만큼 이책이 여행책자가 아닌 여행 에세이 임을 은근히 강조한다.
달리기, 글쓰기, 번역을 꾸준히 하는 모습에서 무라카미의 성실함을 볼 수 있으며, 유창한 영어실력(그가 자화자찬 한 것이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중급정도는 되어 보이는 이탈리아어 실력, 초급 실력의 그리스어 구사하는 모습은 대단히 부러운 역량이 아닐 수 없다.

이책을 읽는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끝끝내 찌뿌둥하게 남는 아쉬움이 있으니... "번역"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라카미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그가 구사하는 화법은 전혀 모른다. 그의 기술화법을 얼마나 잘 번역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책의 특성상 종종 등장하게 되는 외래어 표기에 대한 불만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도 없고 엉망이다.

예를 들어, pub은 '펍'이라고 했다가 '팝'이라고 일관성없이 나열한데에 어이를 상실했다.
꼭 '펍'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고집보다는 '펍'이든지 '팝'이든지 책에서는 통일을 했어야지 않은가...-_-;
이탈리아어를 '페르헷트'라고 표기한 내용이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아주 쉬운 단어는 알고 있다. '페르헷트'라고 발음할 수 있는 이탈리아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perfetto라는 단어를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perfetto는 영어로 perfect이고, '페르펱토'라고 발음한다. f이므로 '헷'으로 음운표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퍼펙트'를 '퍼헥트'라고 표기하지는 않는다 -_-
이탈리아 항공사 이름도 등장한다. '알리탈리아 Alitalia' 라고 발음하며, 한국에서는 대개 이와같이 표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아리타리아'라고 표기했다. 모음 뒤에 L이 올때는 모음의 받침으로 발음이 되고, R이 올때는 다음 음운의 자음으로 발음되는 것은 영어와 비슷한 기본 원리라고 보면 되겠다.(물론 예외도 있고,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것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이탈리아 Italia'를 '이타리아'로 '플랜 plan'을 '프랜'으로 발음해야 한다.

이것은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번역가이면 언어의 기본원리와 상식에 대한 수준이 일반인들보다는 높지 않을까?
일어를 번역하다보니 상기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할수도 있겠다.
[먼 북소리]를 읽은 후 영국소설을 바로 읽게 되었다.
영국소설에도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어가 등장한다.
영국소설이면 영어를 번역했을 터, 그러나 이탈리아어 한글표기도 무난하게 써있다.
이탈리아어 원어, 한글 발음 그리고 해석까지 깔끔하게 적어 놓았다.
그러니... [먼 북소리]의 번역자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의 세심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라카미씨가 외래어 원어 표기없이 일본어로만 늘어놓는 통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거라면, 번역가님... 무라카미씨에게 전해주세요. 처음으로 다가온 일본문학과의 인연, 한번으로 끝나지 않게해달라고...

그렇다... 이탈리아를 일본식으로 이타리아라고 발음해야 한다면 난 또다시 일본문학으로부터 멀어져갈 것이다.